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멜다 마르코스 (문단 편집) ==== 사치 행각 ==== * 이멜다가 살았던 말라카냥 궁의 [[인테리어]]는 최고급이었는데, 말라카냥 궁의 바닥은 [[이탈리아]]산 [[대리석]]이며, 천장은 [[수정(보석)|수정]] [[샹들리에]]로 장식되었고, 욕실에는 도금이 아닌 '''100% 순금으로 만든 [[세면대]]'''가 있었다. 그리고 침실에는 황금으로 도금한 이멜다의 동상이 있었는데, 이멜다는 자신의 황금 동상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고 한다. 물론 건물 안의 거의 모든 물건들은 최고급의 명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 [[파일:external/c2.staticflickr.com/9527370519_c3cfb66e7f_b.jpg|width=100%]] || [[파일:external/i.telegraph.co.uk/Imelda__Marcos___I_3097431b.jpg|width=100%]] || || [[파일:external/c1.staticflickr.com/8336878463_f9740263a3_b.jpg|width=100%]] ||[[파일:external/blog.joins.com/4e6ed8ec9b1d7.jpg|width=100%]] || ||<-2>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이멜다 마르코스가 살았던 [[말라카냥궁]] || * [[필리핀]] 여행에서 유명한 관광코스인 '''[[코코넛]] 궁전'''이 있는데, 이 건물은 이멜다의 사치욕 때문에 만들어졌다. 1981년 코코넛 껍질을 [[파인애플]]이나 [[바나나]] 섬유로 건축 자재로 사용해서 만들어진 건축물로, 약 400억(!) 정도를 들여 지었다. 필리핀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만든 건물이었지만, 정작 이를 본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궁전이 너무 화려하게 지어졌다고 판단해서 코코넛 궁전에 체류하는 것을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말라까냥에서 마르코스 부부와의 국빈 만찬 때, [[요한 바오로 2세]]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를 무시하지 말라"고 마르코스 부부에게 설교했다고 한다. || [[파일:external/media-cdn.tripadvisor.com/the-coconut-palace.jpg|width=400]] || || 코코넛 궁전 || * 마르코스 부부가 해외를 방문할 때는 소형 [[비행기]] 2대를 전용기로 사용했는데, 그 중 1대는 자신들과 측근들을 태우기 위한 비행기였고, 나머지 1대는 자신의 [[드레스]]와 여행용 가방 200~300여개를 싣기 위한 것이었다. 이외에도 무엇을 가지고 다녔는지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물품들을 싣고 여행을 다녔다. * 이멜다가 덥다고 [[바기오]]에 가 있을때, [[파티]]를 할 곳이 없다면서 "파티장을 지어달라"고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게 떼를 썼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지어진 곳이 현재까지 바기오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국제회의장인 '컨벤션센터' 다. 한술 더 떠서 그 건물이 다 지어지자 파티를 하는데, [[설탕]]이 모자라자 '''군용 헬기로''' [[설탕]]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헛소문이라는 설도 있었으나 결국에는 사실로 드러났다. 이런 식으로 약 1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무려 수십 개가 넘게 만들었다고 한다.''' * 파티를 좋아해서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대한 연회와 수많은 파티, 그리고 특히 세계 굴지의 패션쇼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며, 물론 갈 때마다 돈을 신나게 뿌려댔다고 한다. * [[뉴욕]]에서 [[쇼핑]]할 때에는 수행원 40명이 이멜다의 쇼핑을 보조했는데, 그 때 들고 다닌 옷가방의 수가 '''300개가 넘었다고 한다.''' 하루에 한 [[백화점]]에서 1만 달러가 넘는 쇼핑을 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가 [[1980년대]]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에 1만 달러는 엄청난 금액이며, 지금도 [[필리핀인]]들에게는 4년제 대졸 신입사원들의 3년치 급여이기도 하다. 특히 [[필리핀]] 명문대 졸업자의 경우 연봉이 한화로 310만원 정도로, 한국의 8분의 1쯤 된다.] * 뉴욕의 최고가 [[호텔]]에 묵으면서 매일 5천달러어치의 [[꽃]]을 '''매일 매일''' 주문했다. * 파티 용도로 [[뉴욕]]에 별도의 아파트를 구입했고, 가구 인테리어 비용으로 그 1980년대에 약 150만 달러를 지출했다. * 당시의 [[미국]]에서도 이멜다의 사치가 신기했는지, 미국 신문에 여러번 이멜다의 사치가 보도되었다. 특히 어느 날에는 미국 신문 1면에 이멜다가 나왔는데 그 제목이 "달러 잡아먹는 [[불가사리]] 이멜다"였다고 한다. 근데 이멜다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좋아했으며, 그 신문 1,500장을 복사해서 주변 지인과 [[필리핀인]]들에게 뿌려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신문기자들이 "이거 영부인님 비난하는 기사인데요??"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알아보고 황급히 복사를 취소시켰다고 한다. * [[뉴욕]]에서 500만 달러어치의 관광여행을 했다.[*A 2013년 2월 3일 the Asian지 뉴스 중 일부] * 새로운 해변에 리조트를 조성한답시고 [[호주]]산 [[모래]]를 비행기로 실어 날랐다[*A]. * [[맨해튼]]에 있는 건물들을 사들이는데 1억 2천만 달러를 쓰기도 했다[*A]. * 전설처럼 내려오는 에피소드 중에서 이른바 '[[대한항공 086편 이륙지연 사건|치즈회항]]' 사건이 있다. 1970년대, 이탈리아 로마에서 마닐라로 돌아오던 [[필리핀 항공]] 여객기에 탑승한 이멜다가 비행 도중 갑자기 기장에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133673|로마]]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는데, 그 이유가 황당하게도 "[[https://biz.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2/05/11/TKG4QNAS5RFVDMHPPY6LYXRPXU/|로마에서 치즈 사는 것을 깜박해서]]"였다고 한다.[* 참고로 마르코스 부부의 장녀인 아이미 마르코스는 이보다 한술 더 떴는데, 아이미 마르코스는 자녀를 필리핀에 두고 유럽을 여행할 때에 자녀들에게 모유를 수유하기 위해 아버지가 보낸 필리핀 항공의 특별 항공편을 모유 택배로 썼고, 이 때문에 필리핀 항공의 많은 비행이 지연되거나 취소되어 유럽에 살고 있거나 유럽을 여행하던 많은 필리핀인들이 불평을 했다고 한다.] * 이멜다에게는 이른바 비틀스 스캔들이란 것도 있다. 1966년 한창 날리고 있던 비틀스가 서독과 일본, 그리고 필리핀을 도는 월드투어에 나섰는데.[* 당시 필리핀의 국제적 지위는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다.] 이멜다는 필리핀에 도착한 비틀스를 자신의 개인 파티에 초청했다가 거절을 당하자 TV에 나와 “낙심했다”며 눈물을 흘렸고, 다음날 이멜다의 지지자들이 호텔과 공항으로 몰려들어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비틀스는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했지만 이멜다의 지시로 에스컬레이터가 중지됐고, 경호요원 등은 자취를 감춘 상태로 간신히 필리핀에서 탈출했다. 비틀스는 이후 이 사건에 대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https://news.v.daum.net/v/20181118060046559?f=m]] ] * 이멜다는 [[부동산]] 투자를 좋아했다. 일단 무조건 땅을 사놓고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그 부지를 재개발한 다음 땅값을 비싸게 팔거나, 해외의 수많은 부동산들에 투자했다.[* 사실 이런 사례는 정치 후진국에서 매우 흔하다. 한국에서도 특정 정치인들 소유의 토지나 건물이 '단지 소유주가 권력자라는 이유로 재개발된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받는 논란이 여러 차례 있어 왔고, (특히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그 정점)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필리핀은 오죽할까?] 은닉시킨 재산만 해도 약 10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으로 따지면 10조원의 금액이며, 그 중에서 대부분의 부동산은 [[미국]]의 부동산이였다. * 1980년에 이멜다 마르코스는 자신의 51번째 생일을 경축한답시고 [[동물원]]을 하루동안 무료로 개방했고, 상인들이 파는 생활필수품, 사실상 모든 필리핀 물품들의 가격을 10%씩 인하해서 팔도록 명령했다. '''물론 상인들은 그 할인 가격을 다 고스란히 자기가 뒤집어 썼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멜다가 모든 [[버스]] 운전사들에게 무료로 운행하도록 명령하자, 열 받은 운전사들이 운전을 거부하여 수많은 [[필리핀인]]들의 출근길이 막혀버리는 대혼란 상황이 발생했다.[* 1980년 7월 3일 [[경향신문]] 중 일부.] * 필리핀에서도 [[칸 영화제]]같은 대규모 국제 영화제가 열려야 한다는 이유로 마닐라 국제 영화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제가 열릴 건물이 필요해 '''[[부실공사|4개월 안에 건물을 완공시키려고]] 4천명을 동원했다.''' 그러다 너무 빨리 짓는 바람에 건물 공사도중 붕괴사고가 일어나 '''최소 169명이 사망'''하는 [[마닐라 필름 센터 붕괴사고]]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공사를 직행해 어찌저찌 영화제를 열긴 했다. 하지만 영화제는 얼마 안가 망했다. * [[하와이]]에서 망명 중일 때 이멜다 마르코스는 [[영국]]의 데일리 메일 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3천여 켤레의 구두를 수집한 것은 [[필리핀]]산 제품의 판매촉진을 위해서지, 사치광이나 쇼핑광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신발은 필리핀 최대 수출품 중 하나이며, 내가 갖고 있던 신발은 모두 필리핀 제품이었다. [[퍼스트레이디]]로서 국산 제품의 판매를 촉진시키는 것은 나의 의무다."라고 주장했다.[* 1986년 4월 14일 동아일보 보도 중.] 물론 그 구두들이 실제 필리핀 제품인지는 알아서 생각하자. *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활에 대해서 묻자, 이멜다는 "탐욕은 자선이다, 모든 이들에게 나눠 주려면 일단 탐욕스럽게 모아야 한다."라는 망언을 남겼다. 물론 그 자선이 자신의 인생을 위한 자선이라면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